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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혁수 전 이사장님에 대한 건치신문기사
 이흥수  | 2017·10·25 22:41 | HIT : 540 | VOTE :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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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NK1 : http://www.gunch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293
  • 故문혁수 교수, 사회 참여를 실천한 학자[인터뷰] 故문혁수 교수님을 기억하며…강릉원주대 치의학과 예방치의학교실 정세환 교수   

    안은선 기자 | 승인 2017.10.17 17:58


     

    한국 치의학분야에 처음으로 ‘역학’의 개념을 도입해 예방치의학분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예방치의학교실 문혁수 전 교수가 영면했다.

    1952년생인 문 교수는 1970년 부산고 졸업 후 서울대 치대에 입학했다. 동기들보다 1년 늦은 1977년에 졸업한 후 1979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예방치의학과 석사를, 1985년엔 동대학원에서 예방치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오랜 기간에 걸친 투병 끝에 지난 14일 66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이에 본지는 故문혁수 교수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그의 제자인 정세환 교수(강릉원주대 치의학과 예방치의학교실)를 만나 그의 생전 이야기를 들었다.

    정세환 교수는 1995년 서울대 대학원 예방치의학교실에서 석‧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문 교수와 인연을 맺고, 그가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전국 구강보건실태조사와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이하 수불사업)으로 학자로서의 절정을 달리던 7년 여 간, ‘사모님 보다 더 자주’ 그와 얼굴을 마주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1998년도 태국에서 개최된 아세아예방치과학회에 참석 당시 제자들과 함께. (ⓒ정세환 교수)

    ‘역학’, 학자로서 쉽지 않은 길에 서다

    1970년대 말 문혁수 교수가 대학원에서 수학할 당시 치의학분야에서 ‘예방학’의 필요성은 학계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그에 기초가 되는 역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당시 치과계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 교수는 보건대학원에서 청강을 하면서, 역학에 대해 배웠고, 그 열정은 통계학으로 까지 이어졌다.

    그는 1986년 『구강보건통계학』교과서를 출간해 한국 구강보건학 분야에 구강보건통계를 소개하고 구강보건사업의 계획과 평가에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아울러 PC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누구나 쉽게 통계분석을 활용할 수 있도록 'SPSS 통계프로그램' 보급에도 앞장섰다. 또 1992년엔 『치학실험 설계』를 출판키도 했다.

    “서울대 통계학과에서 청강까지 하면서 치의학분야에서의 구강보건통계를 어떻게 도입할지, 분석법이나 연구법의 기초를 닦기 위해 무척 애쓰셨어요. 그러면서 당시 함께 통계학을 공부한 사모님과 연이 닿아 결혼까지 하셨구요. 약간 이야기가 새지만 사모님도 보건통계에 관심이 많은 서울대 간호학과 출신으로, 지금은 방통대에서 통계학을 가르치고 계세요. 아무튼 그 정도로 열정적으로 통계학을 공부하셨다는 거겠죠? 보통 위의 선생님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보통 대학원생들인데, 문 교수님은 쉽지 않은 길을 택했고, 그 결과 지금 많은 학생들이 구강보건통계와 관련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길을 냈죠”

    “구강보건통계라는 건 요즘 많이 회자되는 ‘정밀의료’, ‘맞춤형 의료’의 기초가 되는 거예요. 1990년대 초부터 '아동의 치아우식증 예측 모형'과 '아동청소년의 악안면 성장발달 예측 모형' 개발을 위해 다년간 연구를 하셨어요. 유전자 역학에도 관심이 많으셨고, 전세계적인 트렌드에서 보면 정말 앞서나가시는 분이었죠”

    문 교수는 ‘근거에 기반한 학문 정립과 실천’을 강조하면서 정세환 교수를 하드트레이닝 시켰다. 정 교수는 “1995년에 전국을 누비며 구강건강실태조사를 하면서 그 바쁜 와 중에도 ‘주장을 입증하는 방법은 ’역학‘이라면서, 세미나를 열고 구강역학에 대해 가르치셨어요. 역학은 상당부분 기술적인 거라 정확하게 배우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나머지 공부도 많이 하고….

    특히 당시엔 보건의료관련 통계 모델을 만든다던지 하는 건 우리나라에선 배울 수 없어서 유학을 가야만 배울 수 있다는 게 학계 일반적인 생각이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문 교수님은 개척자셨죠. 구강영역에서 통계모델 만드는 걸 보여줬기 때문에 여러 다른 과 교수님들도 와서 외국 저널에 발표할 논문 구상과 자문을 문 교수님께 와서 얻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치의학계에서 문 교수님께 학문적 빚을 진 사람이 많죠“
    1998년도 미국에서 개최된 미국 중구강보건학회에 참석한 故문혁수 교수. 미국 공중구강보건학회장을 역임한 호로위쯔(Horowitz)박사 부부도 함께 했다. (ⓒ정세환 교수)

    “실천이 없으면 공중구강보건학이 아니다”

    정세환 교수는 공중구강보건학의 정체성과 그 가치, 그리고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을 가르쳐준 인물로 문 교수를 또한 기억했다.

    "95년도에 조교로 문 교수님 밑에서 일하면서 보통 퇴근을 밤 12시 넘어서야 했어요. 그때마다 거의 항상 뒤풀이를 문 교수님 댁 앞에 있는 호프집에서 했는데, 맥주 한 잔 하시고는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공중보건에서 공중은 영어로 Public이고, 언어유희처럼 공중(公衆)이 공중(空中)으로, 즉 하늘이란 뜻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거였어요.

    그건 결국 이론을 개발하고 그에 만족하는 게 공중구강보건학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적용과 참여, 그것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까지가 공중구강보건학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하셨어요. 학문적 근거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학자로서 만족감에 젖어 현실성 없는 이론개발에 그치지 말라는 거였죠"

    정세환 교수는 그의 지론을 따라 현재 자신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예방치의학이라는 학문 분야 자체가 이론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과, 실천이 중요한 분야에요. 실천이 없으면 우리의 연구, 공부의 가치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학문 분야 자체가 참여나 실천을 통해서만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걸 문 교수님을 통해 배웠어요.

    지금 하고 있는 구강보건정책 개발, 수불사업 기술지원단, 산업구강보건원 사업 등 모두 문 교수님과 함께 얘기하며 생각한 큰 틀에서 이뤄지고 있고, 특히 건강불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공중구강보건학과 예방치의학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 교수는 1997년 중앙정부 구강보건과 설치와 2000년 구강보건법 제정에 누구보다 앞장서왔다. 2000년도에 국가주도 실태조사를 책임지며, 자신의 학문적 성취와 구강보건 실태조사, 역학과 관련한 노하우를 모든 사람과 공유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정세환 교수는 밝혔다.

    “사실 당시만 해도 기득권 있는 사람이 다 틀어쥐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는데도, 문 교수님은 국가주도로 실태조사가 이뤄지게 되면 전국의 예방치의학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광고를 내서 공중구강보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교육하고 훈련 시켰어요. 그때 예방치의학 한다는 교수님들은 거의 다 오셨어요.

    지금이야 실태조사든 뭐든 기준과 대상, 연구방법 등이 표준화 됐지만 17년전만 해도 그런 노하우를 가진 건 서울대 치대 문혁수 교수님 이하 예방치의학교실 뿐이었어요. 각고의 노력으로 얻은 자신의 성취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걸 매우 흔쾌히, 게다가 주도하기까지 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셨어요. 그래서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게 된 거에요. 기초부터 심화, 필수 교육과정까지 다 당신이 만드셨어요“
    1999년도에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의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 기술관의 국내 방문 당시 사진(ⓒ정세환 교수)

    수불사업, 치의학자로서의 사회적 실천

    문혁수 교수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초창기 주력사업인 수불사업 전국 확대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활동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건치가 수불사업으로 치과계에 한 획을 긋는 진취적 역할을 하는데, 큰 기여를 한 분이 문혁수 교수님입니다.

    특히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년간 장기추적조사를 통해 수불사업지역인 청주시와 대조지역으로 성남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구강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국내 수불사업의 치아우식 예방효과를 입증해, 국내 수불사업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셨어요. 이는 한국 구강보건학 역사상 ‘구강역학’분야에 새로운 획을 그은 성과라고 할 수 있죠. 그 전까지는 이럴게 장기추적연구를 통한 역학조사가 없기도 했구요. 이런 연구결과를 토대로 연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수불사업의 전면 확대를 위한 실천적 활동에 최선의 역할을 다하셨어요.

    1990년대 초부터 건치가 진행한 수불사업 전국확대에 학문적 뒷받침을 많이 해 주셨어요. 자신감이 있으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 근거를 만드신거죠. 당시에 동문인 송학선 선생님과 한영철 선생님과 자주 만나면서 수불사업과 보편적 구강건강 증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신 걸로 알고 있어요.

    1994년에 과천에서의 수불사업을 시작으로 수불사업이 전국화가 시작돼, 여기저기서 수불사업의 효과성을 묻는 토론회도 많이 열렸고, 요청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않고 다 참석해서 몇 번이고 말씀하셨어요.

    아무튼, 실태조사를 거쳐 수불사업이 국민건강증진법에 들어가게 되면서 지자체 여러 곳에서 수불사업 하겠다는 요청이 많았어요. 문제는 수불사업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불소투입기를 만들 기술이 없었거든요. 각 지자체 별로 정수시설도 다르고.

    결국 문혁수 교수님이 불소투입기 관련해서 실무 기술자를 위한 미국 쪽 가이드를 연구해서 국내 중소기업 중에 생산 할 만 한 업체를 발굴하고, 정수장별 맞춤형 불소투입기 제작까지 관여하셨어요.

    또 1996년과 1997년엔 보건소와 정수장 관계자들을 모아 미국으로 일주일씩 연수를 가서 불소투입과 수불사업 관련해 교육을 하셨죠. 가이드부터 통역, 운전까지 다 문 교수님이 하셨어요. 그때 김광수 교수님이 미국 CDC에서 연수하시던 때라 함께 수불관련 교육을 하셨습니다“

    당시 열정이 넘치는 교수님 밑에서 힘들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정세환 교수는 “전혀 권위적인 분이 아니라서 조사 보조하는 일 외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답했다.

    “저는 당시 뭐 대학원생이기도 했고,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회계하고, 가방도 들고 그랬습니다. 1995년 실태조사만 하더라도 숙박비 정도만 지원받고 하던 때라서 다른 곳에서 받은 것을 아껴서 실태조사를 진행했죠.

    그 해 6월부터 8월까지 주 4일은 전국 각지의 보건소를 돌면서 실태조사를 했어요. 그러면서 문 교수님은 ‘뭔가를 하려면 우리나라 실태가 어떤지 알아야 할 수 있다’고 절 세뇌시키셨죠. 길면 3박4일간 함께 숙식하면서 조사한 적도 있고요.

    수불사업은 또 보건소 관계자들의 협조 없이는 안되는 거라, 이른바 접대도 하고 노래방도 자주 갔었습니다. 물론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 때문에 대부분은 협조적이었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자신을 많이 내려놓으셨어요. 보건소 관계자들과 노래방에서 열정적으로 설운도 씨의 ‘삼바의 여인’을 부르시던 모습이 문득 떠오르네요“

    구강보건의 실천영역에서 ‘활력’ 이어가야
    정세환 교수

    문혁수 교수를 그리며 정세환 교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벌써 문 교수님이 쓰러지시고 16년이 지났는데, 구강보건과 관련한 실천영역에서 보면 16년 전 보다 지금이 더 못하지 않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예를 들면 우리 학교도 그렇고 건치도 그렇고 치과계에서의 사회참여, 진취적 흐름들이 오히려 위축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로 저는 딱 문 교수님이 쓰러지셨을 때 그 나이가 됐어요.

    문 교수님께 배운 수많은 제자들이 있고, 한두명이 아닌데, 그걸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 죄스럽기도 하고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오래, 건강하게 사시면서 학문적으로 연구하셨으면 좋았겠지만, 그가 짧은 기간 동안 이룬 것을 우리가 잘 이어가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 좀 부족해진 게 아닐까 하고요“

    안은선 기자  gleam0604@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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